한국엔 리더십이 없다?

 

매일경제와 LG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의 90%가 "한국엔 리더십이 없다"고 응답하였다고 한다. 이 조사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결의가 있은 직후의 조사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기업에서는 노사가, 학교에서는 교육부에 전교조가 맞서고, 정치권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극한 대립을 하다가 끝내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위기를 맞았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며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보화 사회와 리더십의 위기

공업화 사회에서의 리더십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 이유는 공업화 사회의 특성 때문이다. 공업화 사회는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공장은 기계에 의하여 움직이고 그 기계는 단순하고 표준화된 작업을 반복한다. 기계와 같이 일하는 근로자의 작업도 단순하고 표준화되며 그들의 생활과 사고 방식도 이러한 작업의 영향으로 단순해지고 표준화된다. 따라서 이들은 유사한 생각을 하게되며 서로의 의견차이가 많지 않아 의견통일이 쉽고 공동의 목표를 가질 수 있어 리더십 발휘가 용이해진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는 공장근로자 보다 사무실 근로자수가 더 많은 사회이다. 사무실 근로자들은 기계에 의존하여 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므로 표준화된 작업방식에서 벗어나 업무수행 방법이 자유스럽고 다양해진다. 업무수행 방법이 다양하면 사고방식도 다양해져서 새로운 철학이 생긴다. 새로운 철학은 새로운 정치파벌, 새로운 경영원리가 생기며 성경의 해석까지도 여러 가지로 달라진다. 예수교 신자들은 어떻게 성경의 해석까지도 달라지는가에 의아해 할지 모르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아무 것도 표준화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금기 시 되어 왔던 병역기피가 양심적 병역 거부로 판결이 나는 것도 정보화사회의 일 단면일 뿐이다. 정보화 시대는 더 이상 상명하복, 일사불란이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통의 목표를 갖기가 어렵고 그만큼 리더십 발휘가 쉽지 않게 된다.

한국문화에서 오는 리더십의 위기

정보화 사회에 더하여 우리나라 문화가 리더십의 위기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의 보통사람과 한국의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의 한 단면을 드려다 보자.
미국사람이 자기 아들과 이웃집 아이가 싸움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 미국사람은 싸움을 말리고 두 아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물어본다. 그리고 자기 아들이 잘못 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생각되면 네가 잘못했으니 이웃집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자기 아들에게 타이른다. 그러면 그 아이는 하기 싫은 사과이지만 이웃집 아이에게 사과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한국의 보통 사람이 아이들 싸우는 것을 보았다면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자기 집 아이 역성을 들고 이웃집 아이를 나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하나의 예로 식당에서 어린아이들이 식당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면서 떠들고 주위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가끔 본다. 아이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주위 손님들을 불쾌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자기 아이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이다. 뿐만 아니라 불쾌하게 생각했던 그 부모가 막상 자기 아이가 무례함을 저지르면 마찬가지로 자기 아이의 무례를 저지하지 않는다. 남의 잘못은 지적하면서도 자기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나라의 리더십 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 슈퍼 파워들의 리더십

미국 등 세계의 슈퍼 파워들의 파워는 분열이 아니라 통합에서 이루어졌다. 미합중국의 수립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이 연방 국가를 수립하는 것은 결코 순탄치가 않았다. 뉴욕주와 버지니아주 등 인구가 많은 주는 인구비례로 연방대표 수를 정하자고 주장하였고 인구가 적은 주는 연방대표의 수를 각주에 동일하게 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13개 주 인구의 절반은 영국에서 온 이민 자들이었지만 나머지는 유럽 여러 국가에서 온 이민 자 들이어서 이들은 각기 언어, 신앙, 문화가 다른 민족이었다. 또한 13개 주 의 주요 산업도 달라 주마다 상업, 무역, 수산업 농업이 그 기반이 되기 때문에 각주의 이해가 달랐다. 또한 어떤 주도 조세부과 권과 서부지역 개발권을 중앙정부에 내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이해관계를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며 결국 13개주는 연방국가를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오늘날 세계의 슈퍼 파워를 만드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미합중국을 수립한 것은 13개 주 정치가들이 양보하고 타협하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유럽연합(EU)이 생성된 것도 이와 유사하다. 유럽 여러 국가들도 언어, 인종 역사가 다르며 서로간에 큰 전쟁을 치렀었다. 그러나 이들은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연합국가를 창설하였다. 연합국가를 형성하면 상품, 자본, 인력이 자유롭게 이동하여 효율적인 기업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다. 그러면 그 기업은 미국과 일본 기업에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 결국 유럽에 이익이 된다. 또한 미국과의 교섭 등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단일 창구를 통하여 발언권을 확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각 국은 단기적인 자국의 불리함을 무릅쓰고 연합국가를 만들어 냈다. 이 또한 유럽 정치인들의 원대한 목표아래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정치는 어떠하였는가. 미국이 태동할 무렵 우리나라는 붕당정치에 빠져들어 있었다. 남쪽의 일본과 북쪽 중국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율곡은 10만 양병설을 주창하였으나 조정은 이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일본의 실정과 풍신수길의 의중을 살피기 위하여 황윤길과 김성일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 통신사 편에 보내온 일본의 답서에는 침략의사가 분명했는데도 불구하고 황윤길과 김성일의 의견은 정 반대였다. 황윤길은 침략이 있을 것이라고, 김성일은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당시는 당파싸움에서 동인이 우세한 판국이어서 동인인 김성일의 의견을 택하게 되었다. 나라의 중대사를 두고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져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세한 파벌 쪽의 의견이 국가 방침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는 참담한 임진왜란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正(thesis)과 反(antithesis)은 있는데 合(synthesis)이 없는 나라

이조시대의 사색당쟁과 여러 사화를 보면 자기의 주장과 타인의 주장에서 공통점을 찾아 서로 양보하여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하였다.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지 공동협력자(partner)라는 관념이 부족한 것 같다. 물과 기름 같이 합성(synthesis)이 되지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근래에 크고 작은 끝없는 의견충돌이 이어지고 있지만 합의를 본 것은 드믄 것 같다. 영호남의 대립, 북한과 화해 대한에 찬반, 전교조와 교육부의 대립, 새만금 사업, 친미외교, 비정규직 근로자, 이라크 파병, 성장과 분배, 행정수도 이전 등 헤아릴 수없이 많다.
正, 反, 合의 변증법적 사고는 서양사람들의 사고방식이고 아마도 한국인의 머리 속에는 合(synthesis)이라는 유전자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는 걸출한 리더는 언제쯤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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