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 열광의 진실

 

지난 6월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붉은 악마의 응원은 말 그대로 열광적이었다. 독일과 준결승전에 광화문, 시청 앞 등 전국의 거리에서 700만 명이 운집하였고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붉은 악마의 유니폼인 빨간 티셔츠는 2500만장이 팔렸다고 한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자들의 축구 이야기 이었는데 이번의 월드컵 경기에는 젊은 여성들도 붉은 악마 응원단에 대거 참여하였다.

이는 분명 사회현상의 하나이다. 그러나 단지 사회현상이라고 끝내기보다는 그 원인을 밝히고 그 의미를 되새겨 봐야한다. 사회현상은 하나의 증상이며 증상만 보고 원인을 지나쳐 버리면 그 증상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이상의 승리에 도취되어 붉은 악마들이 열광했던 것은 축제에 참가하는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축구 자체를 즐기려면 운동장에나 길거리의 대형 TV 스크린보다는 집에서 TV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길거리 TV 스크린에서는 선수들의 뛰는 모습을 자세히 보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붉은 악마들이 길거리로 나와 응원하는 것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승리에 대한 쾌감을 더 높이고 또한 응원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국민이 처음에 기대한 것은 월드컵 경기 1승이었다. 그러나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16강에 오르고 8강에 4강에 오름으로서 축구경기는 경기자체보다는 하나의 큰 축제가 되었다. 700만의 붉은 악마의 열광은 축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만약 16강에서 탈락하였다면 이러한 열광이 있었을 가 의심스럽다.

열광의 뒤에 숨어있는 원인, 억눌림의 발산

붉은 악마들이 열광하게된 더 큰 원인은 깊은 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월드컵 역사상 4강에 오른 나라는 수십 국가에 이른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지 못한 열광의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청소년들의 억눌린 감정의 해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억눌린 감정이 월드컵 축구 승리라는 분화구를 찾아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청소년들은 초등학교시절부터 과외공부로 억눌려 지내고 있다. 즐겁게 장난치고 뛰어 놀아야 할 나이에 공부에 속박 당하고 있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이 속박은 더욱 심해진다. 4당5락, 하루에 5시간 자고 공부하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4시간만 자고 공부해야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10여 년 동안의 어린 시절은 과외공부와 고삼병으로 억눌려 살아간다. 이렇게 억눌려온 감정이 축구의 승리라는 출구를 찾아 폭발한 것이다. 이제까지 풀지 못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 것이 붉은 악마의 열광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억눌린 감정은 신체의 이상으로도 나타날 정도이다. 우리나라 20-40세 남자의 남성호르몬은 서양인의 79%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원인은 술 담배 과로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노출 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국민, 교통사고가 많은 나라도 이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의 스트레스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숙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서민들은 양반에게 지배당한 상놈의 한이 서려 있다. 자식을 과외공부로 내 모는 이유는 자신의 서민(상놈)의 한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기 위한 부모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한이 되어 어찌 보면 한이 대물림되는 격이 되고 만다. 젊은이의 한 풀이가 붉은 악마의 열정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국민은 약소국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병자호란, 임진왜란, 근대에는 왜정의 식민지, 38선, 6.25전쟁이 약소국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축구는 전쟁 놀이 같다고 말한다. 심한 몸싸움은 육박전 같고 문전 슈팅은 함포사격, 골인은 점령을 연상시킨다. 태극전사, 전차군단, 거함 침몰, 무적함대, 광주대첩, 계속되는 슈팅은 집중포화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축구의 강국인 폴란드, 포르트갈, 이태리 스페인을 물리치고 미국과의 경기에서도 잘 싸운 것은 이들 강대국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붉은 악마의 열광은 강대국에 억눌려 살던 우리 국민에게 강대국을 패퇴시킨 약소국의 대리만족일 지도 모른다.

휴대폰의 열광도 그 뿌리는 스트레스 해소

청소년들 사이에 수년 전 삐삐에 이어 휴대폰의 열광이 계속되고 있다. 이 휴대폰의 열광도 공부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선생님들은 공부만 하라고 몰아치는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동병상련하는 친구뿐이다. 형제가 많지 않은 지금의 청소년들의 말상대는 친구들이다. 그러나 공부로 인하여 만날 시간은 없고 이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 휴대폰이다. 청소년들의 휴대폰 통화 내용은 긴급 연락사항이 아니라 잡담이 대부분을 이룬다고 한다. 휴대폰의 열광은 청소년들의 공부에 의한 스트레스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다떨기 도구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붉은 악마의 열광은 젊은이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 줄 건전한 놀이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건전한 놀이 산업은 또 하나의 성장산업이 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주말에 몇 시간을 소비하면서 서울 탈출 전쟁을 벌이고 그 다음날 귀경 전쟁을 불사하는 자동차 행렬을 보면 놀이에 굼주린 한국인을 보는 것 같다.

붉은 악마 열광의 또 다른 원인은 공동체 의식, 유행에 민감한 우리 국민성에 있는 것 같다. 젊은층의 개인주의와 함께 아직도 농업사회에서 비롯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이 남아 있다. 주위의 동료가 축구를 좋아하니 나도 같이 좋아하고 동료가 붉은 티 셔츠를 입으니 나도 같이 입고 동료가 광화문으로 가니 나도 따라간다. 축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까지 붉은 티 셔츠를 입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는 느낌에서 일 것이다. 붉은 악마의 열광은 한국인의 민감한 유행성향을 보는 것 같다.

직장에서 재미와 신바람을

일본의 축구스타 나카타는 경기전 일본의 국가인 가미가요를 따라 부르지 않아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왜 가미가요를 부르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나카타의 대답은 "별로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다. 붉은 악마의 미디어팀장 신동민씨는 1995년 붉은 악마의 결성취지는 "축구를 보면서 재미있게 놀자"였다고 한다.

지금의 젊은이 화두는 재미이다. 근엄한 분위기, 권위주의적인 지시로는 재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더구나 경영자들이 암암리에 자기들은 양반이고 근로자들을 공순이/공돌이(상놈)로 보아서는 근로자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몇 백년 묵은 사농공상의 한을 건드리는 것은 근로자들을 강성노조로 만들 수 밖에 없다. 근로자들을 동업자로 이해하고 직장에서 재미를 불어 넣어주면 노사의 반목은 없어질 것이다.

한국사람은 신바람이 나면 열정적으로 된다고 한다. 어려운 일도 불가능한 일도 신바람이 있으면 해낸다. 우리나라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것도 이 신바람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의 장년 세대는 "잘 살아보세"라는 비전을 가지고 밤늦게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자동차도 샀다. 가난하였던 그 시절에는 돈을 버는 것이 재미였다. 서민층에서 중산층으로 탈바꿈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풍족하게된 지금은 돈 버는 것이 재미가 아닌 듯 하다.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다음의 신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락적인 재미이다. 우리는 지난 월드컵에서 한국 젊은이의 신바람의 정체를 확인 셈이다. 재미있는 직장, 재미있는 정치, 재미있는 사회는 붉은 악마의 응원같이 활력이 넘치며 말 그대로 신바람이 날 것이다.

 


|   Home  |   목차로   |